전 베이스 치는 사람입니다.
중2 때 퀸과 에어로스미스를 듣고 감동(?) 받아, 동네 악기사에서 세뱃돈으로 나중에 알고보니 5만원짜리 베이스를 10만원 주고 사기당해 샀는데...
우와.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스무살 때부터 희한하게 자작곡팀만 계속 했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굴러 다니며 (당시엔 홍대 클럽하면 당연히 락 밴드가 연주하는 클럽이었죠. 버스킹이란 개념도 없었고요.)
싱글도 냈지만 망했고요.
당연히 결성과 깨지길 반복하고.
30대 중반엔 저보다 10살 넘게 어린 20대 초반 친구들 데리고 제대로 한 번 해보려다가,
곡도 준비 안 되어 있고, 연습도 안 되어 있는데, 일단 공연부터 신나게 하고 싶어하는 그 친구들의 열정(?)과 결국 안 맞아 팀이 깨지고...
그 후로 조금 쉬었습니다.
사실 저는 직장인+애아빠이고, 당시 그 친구들은 취업준비생들인지라,
정말 간신히 시간을 내면서 밴드를 하는 형편이었고요.
하지만 제버릇 개못준다고,
한 번 밴드 맛을 본 사람이 어떻게 쉬겠습니까.
또 다시 동네 직장인 밴드 구인광고를 기웃기웃.
보통은 제가 밴드를 만들었는데, 이젠 밴드 만드는 게 너무 지긋지긋하더군요.
꼴에 그것도 조직이라고, 조직을 결성하고 관리하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지요.
이젠 다른 사람이 만들어서 자리 잡은 밴드에 편하게 들어가고 싶더군요. ㅎㅎ
흔히 금드럼 은베이스 이러잖아요.
드럼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구하기 어려운 베이스인지라, 밴드 가입하는 건 정말(?) 쉽습니다.
연배가 비슷하고 집 가까운 직장인 밴드가,
베이스 구인광고에 자기들이 하는 커버곡 리스트를 올려놨는데,
솔직히 중고등학교 스쿨밴드 수준(?)이라, "내가 한 수 가르쳐 줘야겠구만" 하고 오디션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아니 이거 웬 걸!
저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 재야의 숨은 고수 형님들이, 중학교 스쿨밴드나 하는 곡들을 연주하며 놀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다.
그날 합주하고 술 마시며 얘기했지요.
아니, 왜 이 정도 연주를 할 수 있고, 이 정도 오랫동안 음악한 사람들이... 아직도 남의 노래 커버나 하고 있냐고. 시간 아깝지 않냐고.
더 나이 먹기 전에 앨범 하나 내고 죽어야 하지 않겠냐고.
머리 벗겨진 아저씨 애 아빠 직장인들이 아무리 커버곡 잘 해봐야,
- 요즘 노래 잘 하면 깊이 없고 철 없다 소리 듣고
- 블루스 잘하면 7080 소리 듣고
- 헤비메탈 잘 하면 아직도 메탈이냐며 비웃음 당하고
- 이래나 저래나 좋은 소리 못 들으면서,
- 일반인 관객 없이 밴드들끼리 서로 박수쳐주는 학예회 같은 대관공연이나 하는 게 뭔 의미가 있냐는 겁니다.
다들 공감했고, 바로 그 다음주 합주 때부터 바로 자작곡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멤버가 창작에 목이 마른 상태였죠.
합주를 거듭하면서 미친 듯이 곡을 써댔지요.
그리고 많은 곡 중에 추리고 추려서 6곡의 자작곡을 편곡까지 완성했고,
EP 앨범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녹음이란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죠.
모두 직장인, 자영업, 애 아빠들.
1주일에 한 번 퇴근 후 합주하는 것도 눈치 엄청 보이는데,
가끔 주말에 공연할 때도 "주말에 애랑 좀 놀지 또 그놈의 지긋지긋한 밴드!" 소리 들으며 음악하는 아빠들인데.
이펙터라도 하나 사면, 잔소리 들을까봐 집에 안 가져가고 사무실 책상 서랍에 넣어두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녹음비를 쓰겠습니까.
아니 돈은 그렇다 쳐도, 일단 녹음실 갈 시간을 못 내죠.
그래서 우리의 DIY 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합주실이 시간제가 아닌,
여러 취미 밴드가 월세와 관리비를 공동으로 내면서 요일을 정해놓고 쓰는 곳이다보니,
다음 날 출근해서 일할 때 피곤한 것만 감수하면, 저렴한 비용에 밤새 시간 제약 없이 쓸 수 있었지요.
보컬이 컨덴서 마이크를 사고,
기타리스트가 녹음용 진공관 앰프를 사고.
저는 원래 쓰던 노트북과 케이크워크, 오디오인터페이스를 준비하고.
비상금을 털어 아웃보드(컴프레서+마이크프리앰프)와 드럼 녹음을 위한 저렴한 마이크 세트를 일본에서 직구하고.
멤버들이 돈을 모아 야마하 모니터 스피커를 사고... 모니터링 헤드폰을 사고...
잡음을 잡기 위해 멤버 중 금손인 기술자가 합주실 컨센트 중 하나에 접지 작업을 하고, 중고 제습기까지 갖다 놓았지요.
밴드에 시간 많이 쓴다고 이혼 위기까지 간 멤버도 생겨났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 장비를 집에 들고 갈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공용으로 쓰는 합주실에 놔두고 다닐 수도 없어서,
커다란 가방에 서너 개에 나누어 멤버들 각자 차 트렁크에 싣고 다녔죠....가 아니라 현재도 그러고 있지요.
매주 조금씩 조금씩 녹음하고,
홈레코딩으로 커버 가능한 부분은 집에서 녹음하여 단톡방에 올려 들어보면서.
지금 4번째 곡을 녹음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모든 작업은 Cakewalk by Bandlab 으로 했고요.
모든 음질 24Bit 48Khz 네요. 곡당 트랙은 드럼에 할당한 4트랙 포함 10~15트랙 정도 쓰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전에 소나 X3가 있었기 때문에 VST 플러그인은 소나에 있던 것을 꽤 많이 활용 중이고요.
원래 소나 또는 케이크워크 번들이 아닌, 열심히 구글링하여 새로 구한 플러그인도 꽤 활용하고 있고요.
솔직히 룸어쿠스틱 따위 고려하지 않은 합주실에서,
보급형 마이크, 싸구려 아웃보드, 싸구려 인터페이스로 녹음하는 우리의 작업이
아주 좋은 음질 퀄리티를 뽑아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어느 정도 믹싱이 된 곡 하나를 제3자 여럿에게 들려주었는데,
"와, 앨범 듣는 것 같다."라는 반응들을 받고는 용기를 얻었지요.
생업이 따로 있고, 취미로 음악하는 우리가,
무슨 녹음 음질 경연대회(?)에 나갈 것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이 듣기에 거북하지 않을 수준의 음질은 충분히 나오고 있으니까요.
일단 현재 계획은 마스터링까지 케이크워크로 직접 끝낸다는 것이고요.
녹음이 마무리가 되면 역시 셀프로 앨범 커버도 만들고, 프로필 사진도 찍고, 심지어 뮤직비디오도 만들 생각입니다.
멤버 중에 애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멤버가 맥북 프로를 갖고 있거든요. ㅎㅎ (확실히 영상편집은 맥으로 하는 게.... ㅎㅎ)
아, 여담으로 그 애플 좋아하는 멤버가 자꾸 Logic 으로 오라고 꼬시는데,
아... 도저히 제가 케이크워크로 하는 미디 에디팅, 웨이브 편집 및 믹싱 속도를 구현(?)할 수가 없습니다.
로직이나 큐베를 써봤는데,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씨쓰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리고 솔직히 로직은 애플룹 빼고는 좋은 거 모르겠습니다.
마우스로 하는 미디 노트 에디팅과 웨이브 편집은.... 케이크워크 만큼 편한 인터페이스를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너무 익숙해서 그런 거겠지만 ㅎㅎ)
우리 밴드의 목표는,
그래도 20~30년을 음악 했는데,
우리라는 사람들이 저지른 창작의 흔적이 쥐꼬리만하게라도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자식들이 커서 "아빠 평생 음악했다며, 뭐 했어?" 라고 물었을 때,
"어 멜론에서 검색하면 나와" 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랄까요. ㅎ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론: 케이크워크로도 다 할 수 있습니다. 안 써본 사람들이 로직이 최고네 스원이 최고나 큐베가 최고네 하는 소리 듣지 마세요.